1. 들어가며
최근 지인이 부동산을 매도하고자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매수인이 예상했던대로 대출이 나올 것 같지 않자 일방적으로 매매계약 파기를 요구하였다면서 도움을 요청해 와서, 관련 문제를 처리해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처럼 부동산 경기가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에는 매도인 또는 매수인이 이미 체결한 매매계약을 파기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임의 해제를 제한하고 계약에 따른 책임을 준수하도록 하려면 계약금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2. 계약금이란
각종 계약을 체결할 때 당사자 일방으로부터 상대방에게 계약금, 보증금, 해약금, 위약금, 예약금, 착수금, 선급금, 증거금 등의 명칭으로 계약금이 지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계약금은 민법 제565조에 따라서 원칙적으로 해약금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민법이 해약금 추정 조항만을 규정하고 있다고 해서 계약금이 해약금의 성질만을 가지는 것은 아니고, 매매당사자 사이에 수수된 계약금에 대하여 매수인이 위약하였을 때에는 이를 무효로 하고 매도인이 위약하였을 때에는 그 배액을 상환할 뜻의 약정이 있는 경우에는 법 제565조 소정의 해약금과 민법 제398조 제1항 소정의 손해배상액의 예정의 성질을 모두 가지는 계약금도 있습니다(대법원 91다2151 판결).
3. 계약금의 지급시기
계약금은 일반적으로 계약체결 당시에 교부됩니다. 그러나 계약체결 당시에는 계약금을 지급하기로 하는 약정만을 하고, 계약금은 그 이후에 지급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다만 해약금의 성질을 갖는 계약금이라면 늦어도 계약당사자 중 일방이 이행에 착수하기 전까지 지급되어야 하고, 반면 위약금의 성질을 갖는 계약금은 매매대금 등의 변제기 이전에만 지급되면 됩니다.
4. 해약계약금약정의 성립
해약계약금약정은 요물계약으로(대법원 2007다73611 판결), 계약금이 현실로 교부되어야 해약계약금약정이 유효합니다. 따라서 계약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였더라도 아직 지급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계약금 상당의 손실을 감수하고 임의로 계약을 해제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매매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금을 다음 날 지급하기로 하고, 형식상 매도인이 계약금을 받아서 이를 다시 매수인에게 보관하게 한 것으로 매수인이 매도인에게 현금보관증을 작성교부하여 준 경우에도 계약금이 지급된 것으로 보아서 당사자는 약정된 계약금의 배액상환 또는 포기 등에 의하지 아니하는 한 계약을 해제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91다9251 판결).
당사자가 계약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교부자가 계약금의 잔금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아니하는 한 계약금계약은 성립하지 아니하므로 당사자가 민법 제565조에 의하여 임의로 주계약을 해제할 수는 없습니다(대법원 2007다73611 판결).
5. 해제권의 행사방법
계약해제의 의사표시와 함께 계약금 교부자는 계약금을 포기하고, 수령자는 배액을 상환하여 매매계약을 임의로 해제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565조). 이때의 계약금은 약정된 계약금이 기준이 되므로, 약정계약금 중 일부금액만이 지급되었음에도 해제를 위해서는 지급된 계약금 전액이 아닌 약정계약금 전액이 지급되어야만 합니다(대법원 2014다231378 판결).
해제의 의사표시와 함께 제공한 해약계약금이 약정계약금 또는 그 배액에 미달하는 경우, 상대방의 이행의 착수가 있기 전까지 나머지 부족액을 제공하였다면, 그 시점에 해제의 효력이 발생합니다(대법원 92다31323 판결).
매도인이 계약해제 의사표시와 함께 계약금 배액을 제공하였음에도 매수인이 수령을 거부하는 경우에 공탁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대법원 91다2151 판결, 80다2784 판결). 그럼에도 계약을 해제하기 위하여 계약금 배액을 공탁한 경우에, 별도의 계약해제 의사표시가 없었더라도 상대방에게 공탁통지가 도달한 때에 계약해제의 의사표시가 있었던 것으로 봅니다(대법원 92다31323 판결).
6. 해제권 행사기간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기간은 “당사자의 일방이 이행에 착수할 때까지”입니다(민법 제565조). 이 때 이행의 착수는 객관적으로 외부에서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채무 이행행위의 일부를 하거나 적어도 이행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전제행위를 하는 것으로, 단순히 이행을 준비하거나, 상대방에게 의무이행을 촉구하거나, 의무이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계약의 이행 착수로 인정되기 어렵습니다(대법원 97다9369 판결).
그런데 당사자 일방이 약정한 이행기 전에 이행 착수하더라도 이행기 전에 이행에 착수하지 않기로 하는 특약을 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약정한 이행기 전에도 이행에 착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 계약금에 의한 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04다11599 판결). 따라서 거래실무에서는 상대방의 계약파기를 막고 싶은 경우에는 신속하게 자신의 채무 이행에 착수하여 상대방이 더 이상 해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도 자주 사용됩니다.
7. 해제의 효과
해약계약금에 기하여 계약을 해제하면 계약의 효력이 소급하여 소멸합니다. 아직 계약 이행에 착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의 원상회복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습니다.